넌 왜 휘어있니?

2015. 3. 16. 01:11 from 쉬운 생각

 

 

 

어 있는 화면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넥서스S였습니다. 전시회에서 구경만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실제 쓸 수 있는 물건 중에서는 최초였을 거에요. 정확히 말하면 AMOLED 패널은 평면이고 패널을 덮는 유리가 곡선이었지만요. 어쨌든 곡면 유리로 인해 화면이 오목해져서 손가락 동선이 줄고, 그립감이 향상되고, 전화받을 때 얼굴에 밀착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넥서스는 그다지 판매하기 위한 폰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소문 없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13년 10월에 갤럭시 라운드가 플랙시블 디스플레이를 달고 나왔습니다. 그간 봤던 넥서스와는 다르게 화면이 좌우로 휘어 있었고 그 모양 덕분에 갤기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LG는 넥서스처럼 위, 아래로 휘어 있는 G Flex를 출시합니다. 폰이 좌우로 휘어야 하는지 위, 아래로 휘어야 하는지 평면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키보드 워리어들은 열심히 싸우는 사이에 제조사들은 TV와 모니터도 오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좌우 끝부분이 사용자를 향해 휘어있어서 몰입감을 높여 준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리고 14년 9월 IFA에서는 패널이라는 이름으로 한쪽 모서리만 휘어놓은 갤럭시 노트 엣지가 나왔습니다. 16:10 화면비를 가진 화면의 왼쪽 16:9만큼은 평범하게 평평하고, 오른쪽 모서리 16:1만큼을 휘어서 옆에서도 볼 수 있고 이런저런 용도로 알아서 잘 쓰라는 것 같아요. IFA에서 갤럭시 노트 엣지를 지켜본 LG는 15년 1월 CES에서 G Flex를 조금 더 다듬어서 G Flex 2를 공개했습니다. 쓰다보니 깜빡했는데 삼성 기어 Fit 같은 스마트워치/밴드도 휜 화면을 달고 있습니다. 손목이 곡선이니까 당연한 거겠죠?




지금까지 화면이 휘어있는 물건을 간략하게 훓어봤는데요. 제목에서 드렸던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넌 왜 휘어있니?"

 

 

익순한 평면 직사각형을 버리고 굳이 힘들게 휘어진 데에는 무언가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사용자에게 메리트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출시된 휘어진 제품들은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우선 커브드TV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커브드TV가 휘어있는 이유를 제조사들은 사용자를 향한 화면에서 더 큰 몰입감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극장에서 사람의 눈이 볼 수 있는 한계치까지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IMAX 스크린도 오목하니까 설득력있게 다가올만 합니다. 하지만 거실과 극장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시청자세입니다. IMAX 스크린은 IMAX社에서 설정한 거리, 각도에서 화면을 봅니다. 반면 TV는 전혀 다릅니다. 집집마다 다르고 같은 집에서도 가족마다 다릅니다. 쇼파와 TV사이의 거리도 다르고, TV가 위치한 높이가 다르고, 쇼파에 앉아서 볼 때도 있고, 누워서 볼 때도 있고, 여럿이서 볼 땐 옆에서 보기도 하고, 아침에 출근 준비하면서 보고, 멀리 부엌식탁에서 밥 먹으면서 보기도 하는 게 TV입니다. TV가 휘어져 있으면 극장처럼 제대로 볼 땐 몰입감이 높아지겠지만, 그 이외의 상황에서는 방해가 됩니다. 스스로 TV를 어떤 자세로 보는지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화면을 휘어놓은 곡률에 대해서도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TV제조사에서는 4200R의 곡률로 휘어 놓고 일반적인 거실환경인 3~4m 정도되는 시청거리에 최적화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영화관, 음향기기, 미디어 등의 시스템 규격을 인증하는 THX[각주:1]에서는 40도나 그 이하의 시야각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에 따르면 60인치 TV조차도 1.8~2.7m 떨어져서 봐야합니다. 바꿔 말하면 몰입감을 높이려면 비싼 휘어진 TV를 사는게 아니람 쇼파부터 앞으로 당겨야한다는 거죠.

출처 : http://www.thx.com/consumer/home-entertainment/home-theater/hdtv-set-up/




그 다음은 갤럭시 노트 엣지입니다. 이전에 나온 휘어진 폰들과 다르게 그립감이나 동선단축이 아니라 화면을 확장하기 위해서 화면을 휘었죠. 패널이라고 부르는 가느다란 공간에 여러가지 알림이나, 도구모음 같은 걸 넣어서 쓸 수 있고 화면이 휘어져있기 때문에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패널이라는 요소가 정말 편한가요? 광고를 보면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가 가느다란 패널로 문자를 확인합니다. 사람은 수평으로 누워있는데 글자는 수직으로 서있는 상황이죠. 누워서 폰을 쓰기위해서 세로고정을 하는 평범한 사용법과는 정반대에 있는 연출입니다. 휘어져 있어서 정면에서 보기도 애매하고 옆에서 보기도 애매한데다가 애초에 누워서 폰 잡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의문입니다. 게다가 야간시계는 더 가관입니다.

 

밤사이에 계속 패널에 시계를 켜놓는 옵션인데 왜 굳이 패널에 넣어야 하나요? 화면 전체를 쓰면 너무 밝아서 수면에 방해가 된다? 갤놋엣은 아몰레드를 쓰기 때문에 필요한 픽셀에만 불이 켜지고 밝아집니다. 화면 전체를 활용해서 까만 바탕에 하얀 글씨를 써도 LCD를 쓰는 다른 폰들과 다르게 방 안이 환해지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켜져있어야 하는데 화면 전체를 쓰면 전력 소모가 심해진다? 전자잉크가 아닌 이상 화면은 전기를 계속 소모할 것이고 잠잘 때는 충전하는게 보통의 사용법이니 시계를 굳이 가느다란 부분으로 봐야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탁상시계로 편하게 쓰려면 일반 탁상시계처럼 큼지막하게 화면 전체를 써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 밖의 다른 용도로는 알림을 패널에 몰아 넣고 카메라 UI나 전화 수신 UI를 패널에서 쓰도록 한 것인데 이건 부분은 그나마 수긍할만 합니다. 휘어진 화면이라 글자가 조금 왜곡되긴 하지만요. 이정도에서 패널을 활용할 아이디어가 동나 버린 삼성은 결국 10cm짜리 자와 Express Me라고 원하는 문구나 사진을 넣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냥 갤럭시 노트 4보다 10만원이나 더 주고 산 패널의 활용도가 이정도였습니다. 그 작은 화면으로 본인의 개성을 표현하라고요? 갤럭시 S4 잠금화면에 "Life companion"문구도 수정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걸 수정해서 쓰라는지 암담합니다. 전자잉크도 아니니 항상 켜놓을 수도 없고요. 패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삼성이 SDK를 공개했지만 서드파티에서 이걸 얼마난 가져다 쓸 지는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곡선화면을 너무 공격하기만 했지만 곡선이 유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니터 3개를 이어쓰는 경우입니다. 모니터와 모니터 3개가 어색하게 각지지 않고 부드럽에 이어지니까요. 다만 이경우도 그 비싼 곡면 모니터를 3개나 사야하고, 3배로 늘어난 부하를 견딜 PC와 넓은 책상이 필요하니 조금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정리하자면 휘어져 있다는 특징은 그냥 그대로 받아드리시면 됩니다. 곡선TV가 아니라고 해서 차별당하고 손해보는 건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곡선 TV가 프리미엄 라인업만 나와서 "곡선=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프리미엄"이미지가 형성된 것뿐입니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웃돈을 주고 화면을 휠 것인지 아니면 평범하게 평평한 TV를 사면서 돈을 아끼거나 화면을 키울지를 결정하시면 됩니다. 폰을 돌려가면서 알림이 짤리지 않게 길게 보는게 더 편할 거 같으면 갤놋엣을 고르시면 되는 거고요. 살짝 김 빠지는 결론이지만 이번 글은 "본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자"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이 글은 http://www.franktime.com/230/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1. 인디아나 존스와 스타워즈로 유명한 루카스필름의 자회사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rushTEN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