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P 중에서 2일동안 글로벌 IT챌린지에서 봉사활동을 할 사람을 뽑아서 송도에 갔었다. 행사장을 정렴한 푸른언덕(이라고 쓰고 윈도XP라고 읽는다.)이 씁슬했고 공식대회에서 퍼블리셔가 서비스하는 일반적인 서버를 쓰는 사실에 당혹했지만 10시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개회식을 시작하면서 행사 진행에 구멍이 터지기 시작했다.
번역리시버의 이어폰 선이 엉켜있었는데 여러사람이 달려들어서 각자 잡은 부분을 당기고 매듭이 생기는 실수가 생겼다. 리시버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뭔가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리시버 본체만 전달하고 이어폰은 전달하지 않아 본체와 이어폰의 짝을 다시 맞춰주는 비효율도 있었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처음인 탓에 장애인들을 대할 때 필요한 배려가 부족했고 청각장애인에게 번역리시버를 전달했다가 리시버가 부족해서 다시 회수해버리는 실수마저 나왔다.
가장 커다란 진행 실수는 점심시간을 시작하면서 나왔는데 개회식을 끝내고 점심시간임을 알리며 밥을 먹고 1시까지 돌아와달라고 방송을 했었다. 그래서 내 책임 밑에 있던 외국 청각장애인들을 함께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내고 같이 밥 먹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송으로 장애인들을 인솔해달라고 내용을 바꿔버렸다. 주변에 수화통역이 가능한 분도 안 배치가 안 됬는데 어떻게 청각장애우와 소통을 하나... 그 중에는 영어가 안 되는 청각장애인들도 꽤 있었다. 부산 IT엑스포때는 슬레이트에서 글을 써가며 적절히 소통을 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어도 영어도 못 썼다. 다행히 바뀐 방송을 듣고 점심을 먹으로 가던 자원봉사자 누나가 돌아와주었고 그 누나가 약간의 수화가 가능해서 내가 맡은 장애인들을 식사장소로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안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송으로 주최측에서 리시버 회수 임무를 자원봉사자들에게 할당했다. 리시버는 참가자들 따라서 이미 행사장 밖으로 나갔는데 무슨 수로 리시버를 회수한단 말인가.... 어영부영 행사장은 정리되었고
그래도 MSP형, 누나들이랑 점심은 즐겁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e-Sports챌린지를 시작했는데 아침에 느꼈던 당혹스러움이 문제로 바뀌었다. 대회를 진행하려면 참가자에게 계정을 지급하고 로컬네트워크에서 진행하거나 못해도 전용 채널을 열었어야 하지만 주최측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참가하는 장애인들도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1시부터 30분 동안 진행된다던 스텝-바이-스텝 회원가입 안내는 일정에서 증발해버렸고 그런 상황에서 주최측은 글로벌 서버는 어느 회사에서 퍼블리싱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퍼블리셔 이름을 알아야 검색이라도 하는데 답답했다. 나는 순진하게 참가자의 상식을 믿고 fifa.com 계정으로 피파 온라인 2를 하려는 참가자의 푸념을 들어주느라 진땀을 뺐다.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아서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스태프는 구글에서 검색하라고 해서 결국 구느님에게서 iahgames.com를 알아냈다. 계정을 미리 준비해오라고 3주 전에 공문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 공문의 내용이 정말 궁금했다. 나는 참가자를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서 그들이 쓰는 이메일과 아이디를 그대로 쓰게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을 하는 도중에 네트워크가 안 잡히거나, IE8이 회원가입을 안 시켜주거나, 국내판 피온의 언프로텍트와 해외판 피온의 언프로텍트가 충돌을 일으켜서 게임 클라이언트 파일이 깨진 것으로 인식되거나 해서 매우 힘들었다. 언프로텍트 충돌이 처음 일어났을 때는 클라이언트가 깨진 줄 알고 주최측에 게임 설치 파일을 요청했는데 그들은 내가 뭘 요청하는지 몰랐다. 1시부터 2시 40분까지 회원가입을 도와주다가 도움을 요청하는 다른 참가자에게 불려가서 네트워크 오류 때문에 게임이 실행 안 되는 거라고 설명하고 시설팀을 부르고 다시 불려가서 해외판 피온 클라이언트에 최대화 버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참가자에게 알려주고 재실행해주는 일의 반복이었다. 마지막으로 계정 생성을 도와주었던 참가자는 수화통역을 하시는 분의 도움으로도 참가자와 소통이 안 되서 참자가의 기존 계정과 전혀 상관없는 계정을 만들어 버렸다. 지쳤다. 그리고 결국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는 참가자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라고 읽을지 월권이라고 읽을지 알아서 판단하시길)하느라 스태프와 대화를 하기도 했다.
사전 준비에서 그런 난리를 치르고 나니 토너먼트는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서 내가 맡은 외국 청각장애인들은 4시에 끝났다. 먼저 끝난 참가자들에 대한 준비가 없는 주최측의 허술함에 또 짜증이 났다.
토너먼트 도중에는 반칙을 남발해서 출전제한이 걸리거나 부상 때문에 출전할 수 없는 선수를 참가하는 장애인 스스로 엔트리에서 빼게 하려고 했는데 영어를 못 읽거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작위적으로 엔트리를 바꿨다. 어떤 참가자는 게임을 하는데 왼손을 전혀 쓰지 않아 심판 휘슬 뒤에도 게임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경우는 왼손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승부차기를 진행하지 못했다. 지나가면서 s키를 눌러 한 골을 넣어줬는데도 그 참가자는 결국 졌다. 토너먼트가 끝나고 다음 일정이 계획되어 있는 것이 없어서 결승에서 패배해서 아쉽게 수상하지 못한 9살 꼬마랑 피파 온라인 한판 하면서 숨을 돌리고 뒷정리를 하고 끝났다.
둘째날에는 첫째날의 경험 덕분에 잔뜩 긴장해서 둘째만 봉사활동하러 온 MSP 누나에게 설레발을 쳤다. 그런데 막상 업무를 전달받고 보니 예상외로 첫째날보다 업무가 줄었다. 첫째날에는 계정 생성이 가장 큰 일이었는데 둘째날에는 미리 계정을 발급해놔서 정해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해주면 끝이었다. 또 첫째날에는 개회식 덕분에 늦게 시작했지만 둘째날은 폐회식을 위해서 일찍 시작했다. 다만 첫째날은 이벤트성 경기였지만 둘째날은 글로벌 IT챌린지의 진짜 목적이라는 것과 문제 유출을 막아달라는 주최측의 당부가 있어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50분동안 진행된 e-Tool챌린지에서 외국 청작장애인들은 워드문서 한 장을 편집했어야 하는데 참가자 한명이 장애분류가 잘못 되어서 엑셀문서를 받았던 것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계정을 관리하는 분을 불러서 문제를 처리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대부분의 참가자가 문서 편집을 끝냈다. 워드문서를 직접 입력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편집이여서 그 정도면 완성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같은 문제를 풀었을 참가자들이 참가자 마다 완성본이 모두 달랐다. 주최측에서 답안파일 이름을 좌석이름으로 꼭 맞춰야한다고 해서 혼란이 있었는데 막상 채점 서버에 파일을 업로드 하고 보니 날짜_아이디_리프레시횟수.docx로 서버가 알아서 이름을 바꿔주었다. 참가자들중에는 편집을 끝낸 문서를 스스로 서버에 올리지 못하는 참가자도 있었고 참가자는 제대로 했지만 서버가 클라이언트를 무시하기도 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에서 끝내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e-Life챌린지를 시작해야 할 때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참가자가 있어 약간 시작을 미루었다. e-Tool에서 e-Life로 종목이 바뀌어도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주최측 덕분에 늦은 참가자들을 기다리는 사이에 다른 참가자들이 마음대로 시작해버리기도 했다. 대회가 시작하고 나서는 참가자들 중에서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한다는 지시사항을 이해하지 못 하거나, URL의 정의를 모르거나, 영어를 모르는 경우가 있어서 대회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가 문제풀이를 도와주면 안 되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서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영어도 어느정도 알지만, URL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까웠다. 참가자가 나름 답을 입력해서 제출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미소를 지어서 하이파이브도 해주고 같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이고 0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하얀 거짓말을 해주기 힘들었다.
채점이 진행되는 동안 축하공연이 있었다. 처음에는 왜 공연을 하면서 채점 시간을 그렇게 길게 잡았는지 못했지만 대회를 진행하고 나서는 이해가 됬다. 완성본과 채점 프로그램으로 답안과 일대일 대조를 시키면 채점 프로그램이 점수를 바닥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 뻔했다. 답안 마다 모두 다른 모습을 보고 놀라고 있을 채점 봉사자들을 생각하니 씁슬했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시상식과 폐회식이 진했됬다. 저녁을 먹고 디너파티를 살짝 구경하다 나왔다. 그 때 지나가다 살짝 마주친 관리자가 수고했다고, 덕분에 잘 끝냈다고 말해주었다.
쉬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최측이 행사 10일전에 갈렸고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이렇게 큰 규모로 갑자기 키운 탓에 혼란이 많았다고 한다.
일단 한쿡이라는 나라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를 조금 할 줄 알고, 컴퓨터가 왜 오류를 뱉는지 이해하고 오류를 없앨 수 있고, 인터넷에서 내가 뭘 원하는지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있고, 인터넷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고, 게임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즐길 수 있고,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의 유니폼 색은 알고 있고, 카카를 수비수에 집어 넣는 행동이 카카를 향한 모욕이라는 걸 알고, 오피스를 적절히 다룬다는 건 내가 한쿡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덕분이니까.
다음에 장애인들과 함께할 기회가 있다면 생각을 더 잘 정리하고 전달할 수 있을 거 같다. 내 정신력의 한계와 시간문제 때문에 내가 맡은 장애인들을 더 열심히 살펴주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래도 기껏 한국까지 와서 자리 채우는 용도로 사용됬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고 제발 그러기를 빈다.
해커톤에서 윈8설치를 도와주었던 때에 이어서 허전한 기분이 든다. 이게 내 한계인지 알지만 아직 어떻게 개선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이름 뒤에 붙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대회에 쓰인 컴퓨터에 윈도XP가 깔린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이건 주최측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의 사정이었다. 윈도가 커널이 업데이트 이후 너무 무거워졌다. 개발도상국에서 쓰일 오래된 하드웨어는 윈도7보다 윈도XP가 더 적합하다. 윈도8마저도 윈도XP보다 무겁다. 하드웨어 제조사들도 오래된 하드웨어를 위한 최신 OS용 드라이버를 내놓지 않고 오래된 하드웨어는 버린다. 개인적으로 IE9가 윈도XP에서도 돌아가기를 바랬는데 개발도상국에서는 절박한 문제다.
자원봉사 도중에는 너무 빠뻤고 쉬는 시간에는 지쳐서 찍은 사진이 없다.